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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린치와 그의 영화들에 대한 코멘터리, <꿈의 방> 의도한 건 아닌데, 뭔가가 타이밍이 딱 맞았다. 의 세계에 흠뻑 빠져 있는데, 마침맞게 데이비드 린치의 자서전 이 나온 셈인데, 적은 가격도 아니고 빽빽한 글씨와 분량도 많아서 살짝 망설이긴 했지만, 이미 린치의 세계에 매혹당한 상태였으므로 배겨낼 재간이 없었다. 한 달 반쯤 느긋하게 읽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척 좋았다. 린치가 만든 영화들에 대한 세세한 해석이나 분석이 담긴 책은 아니지만, 감독의 예술관과 영화 제작 과정에 대해 본인 자신의 견해는 물론 다채로운 주변 목소리들까지 들을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마침 그의 작품을 보면서 읽으니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여러 에피소드와 증언들을 통해 린치 감독에게 인간적으로 매료되기까지 했다. 그리고 물론, 상당한 영감도 얻을 수 있었다. 어떤 측면으로.. 더보기
소통의 미학, <두 교황> 나는 가톨릭 신자는 아니라서, 교황이라는 제도 자체에는 특별한 감응은 없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던 장면 때문에 솔직히 한 인간으로서 그에게 반했다. 시대의 현안인 양극화와 빈부 갈등에 대해 꾸준히 목소리를 낸다는 점에서도 존중받을 만한 글로벌리더 중 하나라는 생각은 한다. 물론 그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 주로 과거 아르헨티나의 군사정권에 대해 취했던 모호한 태도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영화에서도 그 부분이 상당한 비중으로 다루어진다. (그의 회개가 진심이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모든 것이 관례대로 돌아갔다면,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는 교황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 자신도 추기경직을 내려놓으려고 했고, 베네딕토 16세와의 성향 차이를 보더라.. 더보기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와 함께 보낸 연말 지난 연말, 나는 시리즈를 정주행했다. 시즌 1, 시즌 2, 영화판, 세 번째 시즌인 까지.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하루 밤새워 막 달릴 수 있는 종류의 시리즈가 아니라서(특히 시즌 3는 더하다), 매일 한 편, 혹은 많아야 두 편을 보면서 보냈으니, 거의 두어 달을 트윈 픽스의 세계에 흠뻑 젖어 있었던 셈이다. 사실 시즌 3의 마지막 편을 보기 전에는 좀 서글펐다. 지금이 시작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영웅문 시리즈를 처음 읽었을 때, 과 를 단숨에 독파하고(이건 거의 밤새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의 마지막 권을 앞두었을 때 느꼈던 것과 거의 대동소이한 감정이었다. 만 봤던 것도 아니다. 그 사이 과 도 봤다. 두 영화 모두 좋았지만, 역시 린치 스타일이 여실한 이 좀 더 좋았다. 정주행을 결심한 시점만.. 더보기
기분 좋은 피로, 친구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나는 여태 교우관계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래서 사회생활을 못하느냐 하면, 딱히 주변에 그런 인상을 주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굳이 분류하자면 내성적인 인간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조직 안에서 두루 원만하게 지내려 애쓰고, (늘 조금 긴장되긴 하지만) 새로운 사람과도 만나야 할 때는 좋은 인상을 남기려 애쓴다. 그렇다 해도 역시 사교적인 사람은 아니고, 깊은 우정을 인생 제일의 가치로 여기거나 인맥 관리가 성공의 척도라 믿는 부류도 아니다. 한동안 적(籍)을 두었던 곳을 떠나게 되면, 함께 잘 지내던 사람이라도 굳이 연락해서 만나거나 하지는 않는다. 누군가와 소원해지는 것에 그다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편이다. 외려 누군가 정도를 넘어서서 .. 더보기
미술과 부담 없이 친해지기, <미술에게 말을 걸다> 상암동에 있는 회사 건물을 나서면 바로 앞에 고디바 초콜릿 가게가 있다. 조금만 돌아가면 스타벅스가 (당연히) 있고. 각각 영주민들을 위해 나체로 말을 타고 동네를 순회한 고다이바와 오디세우스를 유혹했던 세이렌을 로고로 새긴 글로벌 기업들이다. 일상에서 손쉽게 접하는 상호에도 미술이 담겨 있다. 는 전문적인 식견이나 학습이 없으면 감상하기 어려운 대상으로서 미술을 바라보는 잠재적 편견을 거부하고,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처럼 그저 그 좋음을 맘껏 누리고 일상적으로 부담 없이 받아들이는 데서부터 미술과의 교감을 시작하라고 이야기한다. 당장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상의 미술들을 찾아보고 자유롭게 표현해볼 것을 권한다. ‘맘에 쏙 들어’ ‘색감이 화려하네’ ‘컨셉이 환상적이야’라고 직관적인 반응을 즐기다 .. 더보기
인간적 관점에서 탈피해서 바라보기, <경계선> 가끔 하는 상상이 하나 있다. 외계인이 지구로 쳐들어온다. 대우주 감시망이 전혀 작동하지 못했을 만큼 압도적인 기술적 우위를 가진 존재들이 지구를 삽시간에 점령한다. 그 탁월한 지성과 신체적 강인함과 과학적 진보(그들은 이 모든 걸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식하거나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앞에 굴복한 인류는 제1종의 위상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고, 이제 그들의 처분에 종의 존속이나 처우가 달려 있다. 다행한 것이라면 이 외계 종은 그인간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어서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인간 대표들은 외계인들에게 자비를 간청한다. 우리가 느낄 고통과 상실감을 헤아려 달라, 죽음이라는 비정한 세계로 내몰지 말아 달라, 대화가 가능하니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연대를 모색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적어.. 더보기
감정의 파고 속에서 삶의 품격을 지탱하는 관계의 힘, <결혼 이야기> 간단하게 끝날 것이라 기대했던 이혼 과정이 지리멸렬한 법정 싸움으로 비화되고 과격해진 비방전이 오간 다음, 찰리(아담 드라이버)와 니콜(스칼렛 요한슨)은 단둘이 만난다. 뭔가 이건 아니다 싶어 변호사 없이 만난 것이지만, 서로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면서 속엣말을 마구 쏟아놓는다. 그러다 감정이 극도로 격해진 찰리가 니콜의 면전에 대고 “아이만 괜찮다면 네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극언까지 내뱉고 만다. 그 직후 찰리는 자기가 내뱉은 말에 스스로 무너져내린다. 좌절감과 자기 모멸감에 무너지는 그를 니콜이 다가와 가만히 안아준다. 그런 극언이 오간 직후에 두 사람이 부둥켜안고 서로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는 것은,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니콜은 찰리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더보기
문학 작품을 좀 제대로 읽어내고 싶다면, <교수처럼 문학 읽기> 요즘 평론가들은 별로 인기가 없다. 대중과 동떨어져 은근히 자기현학만 과시하는 평론가들도 있고, 아예 반대로 전문적 식견이 부족한 있으나 마나 한 글을 생산해내는 평론가들도 암암리에 활약하는 까닭도 있을 것이다. 또 한편에서는 에 대한 이동진 평론가의 한줄평에 쓰인 명징과 직조라는 단어가 너무 어렵다며 허세를 부린다고 비난을 가하는 네티즌들이 있다. ‘명징’과 ‘직조’가 어려운 단어라니? 이동진은 가장 대중과 가까운(그러면서도 미더움을 확보한) 평론가 중 하나인데도 자기현학이라니? 이쯤 되면 평론을 받아들이는 독자 쪽에도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하지 않나 싶다. 그래도 영화는 워낙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분야이다 보니(매년 천만의 선택을 받는 작품들이 생산될 정도니까) 평론을 찾는 수요가 적지는 않은데, 문학.. 더보기